극장용 영화 구분이 만드는 기형적 영화계

근래 대형 영화사와 대형 멀티 플렉스의 스크린 독점으로 말이 많았다. 주력(대체로 대자본) 영화가 한 번 분위기를 탔다 싶으면 무조건 스크린 독점으로 장기 상영하며 관객들의 선택권을 박탈했고, 덕분에 작은 영화들이 빛을 보지 못하고 다운로드 서비스로 직행하다시피 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처럼 멀티 플렉스가 전국 극장을 흡수한 환경에서 멀티 플렉스가 밀어주지 않으면 제대로 상영관을 잡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멀티 플렉스의 발전으로 전반적인 극장 시설이 좋아진 것의 부작용이랄까.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을 제기하고자 한다. 지금 소규모 영화들, 대형 영화사와 관계없는 독립 영화들이 상영관을 못 잡는 것을 무조건 멀티 플렉스 탓으로 돌려야 할까?

예전에 영화 <회사원>을 보려 극장을 찾았던 기억이 난다. 솔로라서 느끼는 게 아닌(!) 실내에서도 불어오는 무모한 찬바람에 ‘벌써 겨울인가…’라고 어처구니없는 헛소리를 중얼거리며 상영관 앞에서 대기하는데, 어느 집단의 대화를 듣게 되었다.

“재미있는 거 많이 하네. <회사원> 보자.”
“뭐야, 저건.. 무슨 내용인데?”
“몰라, 액션 영화 같던데..”
“영화관에서 볼 영화는 아닌 것 같아. 집에서나 봐.”

영화관에서 볼 영화란 무엇일까? 세 가지가 될 것이다. 대자본 영화, 최근 대세가 된 영화, 데이트용 영화. 멀티 플렉스의 사랑을 못 받는 소규모 영화나 독립 영화는 당연히 위 세 가지 유형에 포함되지 않는다. 아주 오래전부터 대중은 ‘극장용 영화’와 ‘집에서 볼 영화’를 구분해놓고 있었는데, 극장용 영화에 포함되지 못하면 관객이 제대로 들지 않는다. 대자본 영화나 데이트용 영화에 포함되지 않은 영화가 성공하려면 <워낭소리>나 <집으로>와 같이 대세몰이를 해야 하는 법. 그러나 두 영화 같은 성공은 쉽게 찾아오지 않는 법이다. 얼마 전 화제가 되었던 <피에타>만 해도 ‘극장용 영화’로 구분되지 않았다. 베니스 영화제에서 큰 성공을 거두고 나서야 사람들이 <피에타>를 보러 극장을 찾았지만, 그것도 아주 잠깐 열풍이 불더니 순식간에 식어버렸다. 우리나라 대중은 ‘마이너’라 불릴 법한 영화를 극장에서 보려 하지 않는다. 분명한 진실이다.

그럼 영화관에서 볼만한 영화가 아니라 집에서 볼 영화라면, 어떤 방식으로 보게 될까? 정말 개념 있는 사람이라면 DVD, 블루레이, IPTV, 다운로드 서비스를 이용하겠지만, 대다수가 토렌트나 웹하드를 이용할 것이라 확신한다. 요샌 DRM이니 뭐니 락을 걸어봤자 전부 풀어버리는 세상이다. 다운로드 서비스로 뜨면 토렌트 사이트에도 뜬다고 보면 맞다. 이미 그렇게 영화를 감상하는 사람이 아주 많고, 가끔 저작권 문제로 삭제 요청을 해서 해당 영화를 토렌트로 받을 수 없게 되면 “저작권이 과연 정당한가?” 라는 궤변이 가득한 게시글이 올라오는 커뮤니티마저 있다. 그리고 저작권에 의문을 품는 글에 달린 추천수를 보면 어안이 벙벙해진다.

즉, 대자본 영화의 멀티 플렉스 점령보다 더 큰 문제가 ‘극장용 영화’와 그렇지 않은 영화를 구분하는 대중의 심리일 지도 모른다. 우리나라에서 비인기 장르 영화가 제구실을 하려면 이런 대중의 편견부터 지워야 하지 않을까?

사실, 이는 우리나라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헐리우드에선 이미 일찍부터 이 사실을 깨닫고 ‘폭스 서치라이트’와 같은 저예산 영화, 개성 있는 영화를 지원하는 영화사가 등장했다. 20세기 폭스의 자회사인 ‘폭스 서치라이트’는 저예산 혹은 개성 있는 시놉시스의 영화를 적극 지원해서 배급하고, 상황에 따라 와이드 릴리즈까지 해주는 투자/배급사다. (박찬욱 감독의 <스토커> 역시 폭스 서치라이트에서 배급하고, <블랙 스완>도 폭스 서치라이트에서 배급했다.) 이런 영화사의 목적은 성공적인 흥행을 기록할 가능성이 보이는 영화라면 와이드 릴리즈해서 이익을 얻고, 그렇지 않은 영화지만 잘 만든 영화다 싶으면 영화제에 출품해 인지도를 얻어 DVD/블루레이 시장으로 이익을 얻는 것이다. 이제 우리나라 역시 이런 유형의 (대규모) 회사 건립을 고려해봐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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