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 같은 정치는 안하겠다

“나는 절대 삼국지식 정치는 안하겠다.”
[이백만교장의 노무현 이야기] 삼국지식 정치

“내가 열린우리당의 모세라고? 내가 무슨 신통방통한 요술지팡이라도 갖고 있다는 말인가요?”

노무현 대통령은 껄껄 웃었다. 2006년 6월 청와대 참모들과 모처럼 식사를 하면서 한담을 나눌 때였다. 2개월 전에 열렸던 열린우리당 국회의원 워크숍이 자연스럽게 화제에 올랐다. 유명한 정치 컨설턴트가 그 자리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열린우리당의 모세였다”고 발표한 것에 대한 대통령의 반응이었다. 발표 내용을 보면 그럴 듯해 보였다. 당시 동아일보 보도내용이다.

“열린우리당이 (4월) 2일 경기 양평군 남한강연수원에서 개최한 국회의원 워크숍에서 정치컨설팅그룹 ‘민(MIN)’의 박성민 대표는 ‘열린우리당의 오늘과 내일’을 주제로 특강하면서 ‘열린우리당을 유대 민족, 노무현 대통령을 모세’에 비유했다.
박 대표는 ‘유대 민족 왕족 출신이 아닌 모세가 유대 민족 최고 지도자가 된 것은 호남 출신이 아닌 노 대통령이 민주당 소속으로 대통령에 당선된 것과 비슷하다’고 말했다. … 그는 ‘유대 민족이 이집트를 나섰지만 뒤에서는 파라오의 군대가 쫓아오고 앞에는 홍해가 있는 기막힌 상황에 봉착했다’며 ‘이것은 17대 총선을 앞두고 열린우리당이 당 지지율에서 3위를 하던 상황과 똑같다’고 말했다.” 1)

노 대통령은 덧붙였다. “대통령 되기 전에는 바보라고 했으면서…, 대통령 되고 나니 정치9단, 정치10단이라고 한다. 이게 말이 되는가? 야당이 탄핵 으름장을 놓을 때 사과를 하지 않은 것은 평소의 원칙과 소신에 따라 한 것이었는데…. 마치 고도의 계략을 쓴 것으로 오해하는 사람들이 많으니 참 답답하다.”

노무현 대통령이 탄핵에서 되살아나자, 정치 물을 많이 먹은 사람일수록, 스스로를 정치전문가라고 생각하는 사람일수록, ‘노무현의 신통력’을 믿는 경향이 짙었다.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이인제 대세론을 꺽은 것, 막판 단일화 경선에서 정몽준을 극적으로 누른 것, 결선에서 한나라당의 이회창을 이긴 것, 대통령 취임 이후의 재신임 논란, 탄핵 뒤의 부활…, 일련의 과정을 보면 그런 생각도 무리는 아닐 것 같았다. 그러나 이것은 노무현을 몰라도 한참 모르는 사람들의 수준 낮은 상상력이었다. 계략과 음모가 난무하는 현실 정치에서는 그런 상상이 가능하겠지만, 유독 노무현만은 달랐다. 조화를 부릴 만한 신통력이 없었고 그럴 의사도 없었다.

노무현의 오랜 정치참모였던 안희정(현 충남도지사)의 회고다.

“일찍부터 노무현 대통령은 ‘나는 절대 삼국지식 정치는 안 하겠다’고 말했다. 어떤 대의나 가치를 향해 함께 가는 것이 중요한 것이지, 단지 세력을 규합해 권력을 주무르는 일을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2)

삼국지는 한국 사람들이 가장 많이 읽는 중국 역사소설이다. 삼국지는 어떤 소설인가. 안희정은 말한다.

“등장하는 군상들은 어떤 대의나 가치에 동의하고 이를 위해 서로 최선을 다하는 관계라기보다는, 한 인간이 어떻게 보스에게 함락되는가의 정치공학으로밖에 보이진 않는다. 제갈량이 유비를 선택한 것 역시 세 번씩이나 자주 찾아가서 청하고, 낮잠 자는 자신을 깨우지 않으려고 초가의 문 앞에서 한나절이나 기다렸기 때문이다.” 3)

노무현 대통령은 2004년 5월 연세대 특강에서 대학생들에게도 말했다. “열국지 시대의 리더십을 갖고와 저더러 (그렇게) 하라는 사람이 있는데 받아들이기 어렵다.”

열국지도 삼국지와 같이 중국 춘추전국시대를 배경으로 한 역사소설이다. 열국지나 삼국지나 내가 성공하기 위해 남을 얼마나 잘 속이냐, 즉 누가 계략을 잘 쓰느냐를 주제로 하고 있다. 수많은 영웅호걸들이 천하의 권력을 놓고 서로 먹고 먹히고, 속고 속이는 게임의 연속이다. 그래서 흥미진진하다. 요즘 말로 하면 기상천외한 정치공학이 만발하는, 정치적 간계의 백화점이다.

심각한 문제는 탄핵 사태 이후에 벌어졌다. 야당 정치인들이 노 대통령의 중요한 정책 제안에 대해 순수하게 생각하지 않고 색안경을 쓰고 보기 시작한 것이다. 노 대통령으로서는 답답하기 그지 없었다. 선거제도의 근본적인 개혁을 전제로 한 대연정 제안이 대표적인 사례다. 선거제도 개혁은 사라지고 대연정에 대한 논란만 불거졌다. 노무현이 그 때의 심정을 자서전에 써놓았다.

“탄핵사건 때문에 총선에서 진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내가 하는 모든 일에 고도의 술수가 숨어 있다고 보았다. 대연정 제안을 완전 무시하고 일절 대응을 하지 않았다.” 4)

노 대통령이 이런 분위기에 대해 참모들에게 한마디 더 보탰다. “이 사람들이 아마 나한테 놀랬나 봐요. 내가 던지는 것은 무조건 받지 마라. 내가 던지는 것은 처음에는 뭐 호박 같아도 나중에는 다 지뢰다. 이렇게 본 모양이에요.”

여당 정치인들도 주눅이 잔뜩 들었다. 자기들이 모르는 기발한 계략이 있을 것으로 생각했는지 가타부타 의견개진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 차기 대권주자로 활발하게 뛰고 있던 열린우리당의 거물 정치인들도 입을 다물고 여론의 추이만 관망했다. 여당(열린우리당)은 대통령의 직관에 놀랐고, 탄핵을 주도했던 야당(한나라당 민주당)은 꼼수라면서 놀랐다.

오히려 정치를 잘 모르는 ‘순진한 참모’들이 대연정을 극력 반대했다. 아이러니였다. 연세대 총장 출신인 김우식 비서실장의 기억이다.

“2005년 여름 어느날, 긴급 소집된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대연정 제안에 대한 의견을 물어왔다. 이때 내가 불손할 정도로 반대의사를 표했다. 순간 회의 분위기가 굳어지고 긴장감마저 돌 때, 대통령께서 그 특유의 싱거운(?) 웃음을 지으며, ‘실장님! 제가 잘 할 게요. 걱정 마세요’ 이 한마디로 분위기를 확 풀어주었다.” 5)

노무현은 기본적으로 계략의 정치를 거부했다. 그래서 ‘계략의 천재’ ‘계략의 신’으로 불리는 제갈량을 가장 싫어했다. CBS라디오 정혜윤 피디(PD)가 노무현이 대통령 되기 전에 인터뷰했던 내용이다.

“칠종칠금(七縱七擒) 이야기 아세요? 맹획이 제강량에게 일곱 번이나 잡혔다가 풀려났다가 또 잡히는 삼국지 속 이야기 말이에요. 맹획이 되고 싶은 가요? 제갈량이 되고 싶은 가요?”
“아, 맹획이지요.” 6)

노무현은 제갈량보다는 맹획이 되고 싶은 ‘희귀한 정치인’이었다. 노무현은 홍해 바다에 길을 낸 ‘기적의 지도자’ 모세도 아니었고, 마른 하늘에 동남풍을 불러일으킨 ‘도술의 지도자’ 제갈량도 아니었다. 계략 간계 술수 꼼수 정치공학…, 이런 단어는 그의 사전에 없었다. 노무현은 원칙과 소신에 따라 ‘돌직구’만 던지는 우직한 정치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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