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카키 마사오, 박근혜 6억 삼성장학생 대선후보 첫 TV토론 후기

우리는 왜 다카키 마사오, 박근혜의 6억, 삼성장학생에 대해 말하는 걸 두려워하는가?

현행 선거법은 대선후보 TV토론에 참석할 수 있는 자격(토론회 초청대상 후보자 기준)을 다음과 같이 세 가지로 규정하고 있다.

가. 국회에 5인 이상의 소속의원을 가진 정당이 추천한 후보자
나. 직전 대통령선거, 비례대표국회의원선거, 비례대표시·도의원선거 또는 비례대표자치구·시·군의원선거에서 전국 유효투표총수의 100분의 3 이상을 득표한 정당이 추천한 후보자
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규칙이 정하는 바에 따라 언론기관이 선거기간개시일전 30일부터 선거기간개시일전일까지의 사이에 실시하여 공표한 여론조사 결과를 평균한 지지율이 100분의 5 이상인 후보자

<공직선거법 제82조의2 (선거방송토론위원회 주관 대담·토론회)>

그래서 이 법률에 따르면 원래 대통령선거 TV토론에 나올 수 있는 후보는 새누리당 박근혜, 민주통합당 문재인, 진보정의당 심상정(국회의원 7명), 통합진보당 이정희(국회의원 6명), 무소속 안철수 후보(여론조사 5%이상 지지) 등 모두 5명이었다.

[이 세 가지 기준에 들지 않는 그외 대선후보들(박종선, 김소연, 강지원, 김순자)은 12월 5일 밤 11시에 따로 토론회 일정이 잡혀 있다]

하지만 이 중에서 안철수와 심상정은 대선후보 등록을 하지 않았고, 결국 박근혜·문재인·이정희 이렇게 3명만 제18대 대통령선거의 후보자간 TV토론에 참석했다. 이것은 분명히 법으로 규정된 TV토론이고(초청받은 후보자는 정당한 사유가 없는 한 토론회에 참석해야 함), 총 3회의 TV토론 중 첫 번째 토론을 이제 마쳤으니 앞으로 두 차례(12월 10일 월요일 저녁 8시, 12월 16일 일요일 저녁 8시)의 방송이 남아 있는 상태다. 혹자는 명백한 양강구도 속에서 지지율 1% 내외에 불과한 통합진보당 이정희 후보가 TV토론에 참석하는 것을 두고 부정적으로 얘기하지만, 이건 엄연히 법적으로 보장된 권리이므로 사실 누가 이래라 저래라 할 성격의 문제는 아니다. 다만, 다른 대선후보들(박종선, 김소연, 강지원, 김순자)이 관련법 개정의 필요성을 주장할 수는 있겠다.

[사진자료: 연합뉴스]

어쨌든, 많은 유권자들이 관심 있게 지켜본 첫 번째 TV토론은 여성후보 2명에 남성후보 1명이 등장하는 사상 초유의 상황을 연출했다. 역사상 처음으로 여성후보가 더 많은 대선 토론회가 펼쳐진 셈인데, 개인적으로는 이것 자체가 상당히 의미 있는 변화라고 생각한다. 성별을 떠나서 능력이 있다면 누구든지 지도자가 될 수 있고, 사람들도 얼마든지 편견 없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이다. 이번 대선에서 여성후보들의 본격적인 등장은 분명히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한 부분이고, 우리 사회의 양성평등에도 자연스럽게 기여하지 않을까 싶다.

[총 7명의 대선후보 중에서 여성은 4명이고, 남성은 3명이다. 당연히, 여성도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될 수 있다!]

젠틀 문재인, 멘붕 박근혜, 통쾌 이정희

우선 대선후보 TV토론 첫 번째 방송에 대한 전반적인 평을 하자면, 문재인은 지나치게 신사적이었고, 박근혜는 너무나 안습이었으며, 이정희는 참 시원시원했다. 각 후보의 득실에 대해서는 어차피 많은 사람들이 분석할 테니 그냥 넘어가고, 여기서는 딱 이 얘기만 하겠다.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 두 번째와 세 번째 토론회에서도 이번처럼 존재감을 제대로 드러내지 못하면 절대 안 된다! 상대는 ‘묻지마 콘크리트 지지율’ 하나만 믿고 차기대통령을 노리는데 그저 점잔 빼고 앉아서 ‘네거티브 안 한다’라고만 말하면, TV토론을 하기 전이나 하고 난 후나 아무런 변화도 없을 것이다. 물론 재반론을 막는 토론 규칙 자체가 말이 안 되지만, 그래도 최소한 문재인과 박근혜의 차별성은 보여줘야 되는 것 아닌가?

지금 야권이 박근혜의 고정 지지율을 뛰어넘을 수 있는 방법은 투표율 상승밖에 없는데, 뭔가 다른 점이 보여야 사람들이 투표장에 가지 않을까? 수첩에 적힌 걸 그대로 읽는 사람과 똑같이 밋밋하게 토론하면, 사람들이 투표의 필요성을 절감할 수 있나? TV토론을 통해 뭔가 확실한 메시지를 던져줘야, 묻지마 콘크리트 지지층 외의 유권자들에게 관심을 받을 수 있다. 이번에 문재인이 토론하는 모습을 보면, 마치 승기를 잡은 사람이 지지율 변동 없이 그대로 투표일까지 현상유지를 하려는 것 같았다. 상대가 다른 누구도 아닌 박근혜인데, 도대체 어떻게 이런 식으로 토론을 할 수가 있는지 모르겠다. 오히려 박근혜는 이번에 문재인과의 공방에서는 특별히 잃은 것도 없고 얻은 것도 없는, 한마디로 ‘선방’했다. 계속 이대로 가면? 십중팔구 박근혜한테 진다.

한 번 상상해보자. 만약 이정희가 없었다면, 문재인과 박근혜의 양자토론은 어땠을까? 물론 실제로는 이정희도 토론에 참석했기 때문에 문재인이 가만히 있었을 수도 있는데, 어쨌든 진짜 재미없는 토론이 됐을 듯싶다. 점잔 빼고 앉아 있는 문재인과 수첩에 적힌 걸 그대로 읽는 박근혜.. 사실 결과론일 뿐이지만, 이 조합이 얼마나 지루했을지는 안 봐도 비디오다. 솔직히 말해서, 박근혜 입장에서는 TV토론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게 그리 많지 않다. 어차피 고정 지지층은 토론회 결과와는 무관하게 박근혜를 찍을 가능성이 높으니, 그냥 별 탈 없이 무사히 넘기기만 해도 된다. 그래서 이제까지 토론회를 최대한 피해온 것이고, 이제 선거일까지 보름도 남지 않았으니 나름 성공한 셈이다.

그런데, 안철수가 사퇴하고 심상정이 후보등록을 하지 않는 그 순간에도 꿋꿋하게 자리를 지키던 ‘다크호스’ 이정희가 있었다. 그녀는 4.11 총선 전까지만 해도 많은 진보정당 지지자들의 사랑을 받았고, 심상정이나 박영선과 함께 대한민국의 첫 번째 여성대통령 후보로 이름을 올렸다. 하지만 이정희에겐 치명적인 문제가 있다는 것이 총선 직후 밝혀졌고, 소위 말하는 좌파는 그녀에게 크게 실망한 채 ‘내놓은 자식’ 취급을 하기에 이른다. 이정희는 한동안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졌으며(오히려 그래서 독자적으로 후보등록을 할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심상정-노회찬-유시민 3각 편대의 움직임만이 진보정당의 존재증명을 할 뿐이었다. 그리고 지금, 아이러니컬 하게도 원래 심상정이 있을 뻔했던 자리에 이정희가 서있고, 대선후보들의 첫 번째 TV토론을 통해 그녀는 완전히 반대편에 서있는 박근혜를 생방송으로 멘붕시켰다.

아무도 함부로 말하지 못했던 다카키 마사오, 박근혜 6억, 삼성장학생

대선후보 TV토론 직후, 국내 3대 포털사이트(다음, 네이트, 네이버)의 실시간 검색어에는 갑자기 ‘다카키 마사오’라는 단어가 등장했다. 그리고 30여 분 뒤, ‘오카모토 미노루’라는 단어까지 등장했다. 트위터에서도 난리가 났고, 멘션의 대부분은 도대체 다카키 마사오와 오카모토 미노루가 뭔지에 대해 알려주는 내용이었다. 여기서 굳이 다카키 마사오와 오카모토 미노루에 대해서 구구절절 설명할 생각은 없다. 그냥 박정희가 다카키 마사오이고, 오카모토 미노루가 박정희다. 한마디로, 박근혜는 다카키 마사오의 딸이면서 동시에 오카모토 미노루의 딸인 것이다. 박근혜는 생방송 중에 이 두 이름을 들을 줄 상상이나 했을까? 아니, 자기 면전에서 오카모토 미노루와 다카키 마사오를 입밖에 내는 사람이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하지만 이정희는 생방송 중에 박근혜의 면전에 대고 이 두 이름을 토해냈다. 사실 박정희가 친일행각을 벌이면서 다카키 마사오로 이름을 바꾸고 또다시 오카모토 미노루라는 이름을 만들었다는 것은, 그다지 새로운 내용은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미 알고 있던 사항이고, 조금만 우리 역사에 관심이 있다면 관련 자료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그런데, 지상파 방송 중에 이 이름들이 등장한 경우는 아마도 거의 없었을 것이다. 도대체 왜 그랬을까? 무려 ‘박정희’의 이름인데, 어째서 이정희의 언급이 이토록 신선하게 느껴지는 것인가? 대한민국의 수많은 언론인들은 그동안 대체 뭘 하고 있었는가? 이러고도 우리가 진정한 자유민주주의 사회에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또 이정희는 박근혜가 전두환으로부터 받은 6억 원에 대해서도 정면으로 비판했다. 박정희가 축적한 비자금을 그가 총에 맞아 죽은 후 실권을 장악한 전두환이 청와대 금고에서 발견했고(전체 9억 6천만 원 중에 6억 원을 줬다), 박근혜는 그 돈을 아무런 거리낌없이 받았다. 이것 역시 익히 알려져 있던 사실이고, 전두환이 재판 받을 때 법정에서 진술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런 내용 자체를 모르는 사람이 너무 많다. 이걸 단순히 역사에 관심이 없어서 그렇다고 치부할 수 있을까? 당시로서는 굉장히 어마어마한 금액이었을 이 돈은 어쩌면 대선후보 박근혜의 경제력에서 상당 부분 토대를 이뤘을 수도 있는데, 이제까지 제대로 된 검증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이제 대선투표일까지 보름도 채 남지 않은 상황에서, 도대체 전두환과 박근혜의 관계를 어떻게 규명할 것인가? 만에 하나 박근혜가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독재자 전두환이 어떻게 나오겠는가?

이뿐만이 아니다. 이정희는 우리 사회 각계각층, 심지어 정부까지 장악하고 있는 삼성장학생에 대해서도 직격탄을 날렸다. 다카키 마사오나 박근혜의 6억처럼, 이것도 전혀 새로운 사실이 아니다. 삼성의 패악질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고, 삼성장학생들의 전횡은 현재 한국사회의 가장 큰 문제 중에 하나다. 그런데 삼성을 공개적으로 비판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무엇이 그렇게 두려운지, 대한민국의 선출직 공무원들은 삼성 얘기만 나오면 꿀 먹은 벙어리가 된다. 언론은 두말할 것도 없고, 학자들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이정희가 모든 국민들의 관심 속에 생방송으로 진행된 대선후보 TV토론에서 삼성장학생을 대놓고 거론한 것이다. 적잖이 놀란 사람들도 있을 테고, 개인적으로는 무척 통쾌했다.

– 이완용과 박정희와 이명박의 한일협정에 대한 단상

– 천억원대 추징금 미납한 전두환, 육사에 천만원 이상 기부?

– 재벌2세가 정부와 국회를 우습게 보는 이유

이정희, 우리의 두려움을 만천하에 폭로하다

다카키 마사오(오카모토 미노루)는 1960년대 초에 한일협정을 밀실에서 추진했고, 결국 1965년 6월 22일에 한일기본조약을 정식으로 조인했다. 수많은 국민들의 거센 반발에도 불구하고 그는 한일협정을 밀어붙였고, 박정희 정권은 비상계엄을 선포하기까지 했다. 이 조약은 기본조약과 4개의 부속협정, 25개의 관련 문서로 구성됐는데, 부속협정에는 한일어업협정, 재일교포의 법적 지위 및 대우 협정, 경제협력협정, 문화재협정이 있다. 박정희가 체결한 한일협정에는 일본의 강제침탈에 대한 사죄나 배상, 독도의 한국 영유권에 대한 표현이 없으며, 무려 47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전히 논란이 되고 있다.

다들 알다시피, 독도 문제는 계속 반복되고 있으며, 어업협정 역시 해결되지 않았고, 문화재도 극히 일부 환수에 그치고 있으며, 일본의 배상과 관련된 재판은 끝날 줄을 모른다. 도대체 어떻게 이걸 정상적인 한일협정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런데도 우리는 광복 전 박정희 친일행각의 가장 기본적인 사실이라고 할 수 있는 그의 또 다른 이름 두 개인 다카키 마사오와 오카모토 미노루에 대해서는, 2012년 지금까지도 제대로 말 한마디 못하는 사회에 살고 있다. 과연 대한민국은 언론의 자유가 온전히 보장되고 있는가?

전두환은 1996년 3월 18일 서울지법 417호 대법정에서 열린 12.12 사건 2차 공판의 법정 진술을 통해, 박근혜가 6억 원 중 3억 원을 “아버지 시해사건을 잘 수사해달라”며 수사비조로 다시 줘서 돌려받았다고 말했다. 이에 반해, 박근혜는 지난 2007년 7월 19일 전국에 생중계된 한나라당 대선후보 검증청문회에서 “3억 원을 돌려준 일이 없다. 6억 원을 받아 아무 문제 없는 줄 알고 감사히 받았다”고만 밝혔단다. 청와대 금고의 9억 6천만 원은 도대체 어떤 돈일까? 그리고 박근혜가 전두환으로부터 6억 원을 받은 것은, 그녀의 말대로 정말 아무 문제가 없는 것인가? 또 그 중 3억 원을 전두환은 돌려받았다고 하는데, 박근혜는 도대체 무슨 의도로 돈을 줬을까?

유력한 대선후보 박근혜와 독재자 전두환 사이의 돈 거래에 대해, 대통령선거 투표일이 불과 2주밖에 남지 않은 지금 이 순간까지도 우리는 전혀 검증을 하지 못했다. 원래 몰랐던 내용을 이번에 이정희를 통해 새로 알게 된 것도 아니다. 많은 이들이 이미 알고 있었지만, 감히 이 문제를 거론하지 못했다. 과연 무엇이 우리를 이런 두려움에 떨도록 만들었을까? 삼성장학생 문제도 마찬가지다. 삼성을 빼놓고는 경제민주화를 제대로 논할 수 없다는 것을 다들 잘 알면서도, 공개적으로 이 문제를 얘기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삼성에 대한 일종의 공포가 있다고 볼 수도 있는데, 여기에는 말뜻 그대로의 공포뿐만 아니라 ‘삼성이 망하면 한국도 망한다’는 얼토당토않은 바보같은 궤변까지 포함될 것이다. 우리가 이런 비겁함을 떨쳐낼 수는 없을까?

이정희를 좋아하든 싫어하든, 그녀의 주장에 동의하든 동의하지 않든, 어쨌든 이정희는 자유민주주의 사회가 정말 어떠해야 하는지를 지상파 생방송을 통해 전국민에게 고스란히 보여줬다. 우리는 거리낌 없이 다카키 마사오(오카모토 미노루)에 대해 얘기할 수 있어야 하고, 박근혜가 전두환으로부터 받은 6억 원에 대해 당당하게 검증할 수 있어야 하며, 삼성장학생에 대해서도 두려움 없이 비판할 수 있어야 한다. 언론이 얼마든지 이런 주제들을 다룰 수 있어야 함은 물론, 누구든지 자신의 의견을 자유롭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이정희가 우리의 괴상한 금기를 보기 좋게 깨뜨렸고, 이렇게 신선한 충격은 한국사회를 분명히 좀 더 성숙하게 만들 것이다. 이게 바로 다양성의 미학이며, 이정희 같은 소수파의 존재 이유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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