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릎팍도사 유세윤 마저 침묵했던 정우성의 한마디

“충분히 물을 드셔 주시기 바랍니다. 준비됐습니까? 준비되셨습니까?”

예능 프로그램에서 내보내는 VTR 영상에는 반드시 방청객의 호응 소리가 포함되었던 그 시절. 돈을 받고 출연하는 아르바이트생들로 구성되어있었던 방청객의 목소리 가운데 이것만큼은 의무감에서 나오는 기계적인 호응이 아니라 정말 진심을 다한 감동에서 나오는 탄식이라고 생각했던 목소리가 있습니다. 바로 영화 비트에서 로미(고소영)에게 몇 차례씩 이용당하던 민이(정우성)가 그럼에도 다시 만난 로미가 사랑스러워 어찌할 줄 몰라 순진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는 장면이었죠. 그 우수에 젖은 눈동자가 어찌나 고혹적으로 느껴지던지. 순간 터져 나오던 방청객의 감탄사는 단순히 일당을 받아 나올 수 있는 의무적인 호응이 아니었습니다.

평소 정우성의 팬이 아니었던 저조차도 한순간 정우성에게 홀리듯 매료된 장면이 있었죠. 정확히 무슨 제품을 선전하는 씨에프였는가는 기억나지 않습니다만 “사랑에 빠진 정우성의 얼굴”만큼은 정말 일품이었던 어떤 광고의 한 장면. 여자에게 사랑을 고백하고 그 구애를 허락받은 남자가 온 세상이 자신의 것이 된 것처럼 거리를 날아다니듯 뛰어다니며 기쁨을 만끽하는 모습은 오래된 기억이지만 지금도 눈에 선할 만큼 인상적인 연기로 남아있습니다.

그렇게 정우성은 “사랑에 빠진 남자”의 모습을 그 어떤 대단한 배우보다 아름답게 표현할 수 있는 배우였습니다. 물론 정우성이 연기파 배우라 불릴 만큼 대단한 연기력을 갖고있는 배우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만 적어도 정우성이 제게 각인시킨 저 두 장면 이상으로 사랑에 빠진 남자의 얼굴을 제대로 표현할 수 있는 배우는 없었어요. 그리고 그것은 단순히 연기로만 나올 수 있는 화면 위의 허상이 아니었나 봅니다. 정우성은 정말 영화처럼 사랑을 하고 결별의 상처마저 영화 속 주인공처럼 안아줄 수 있는 진짜 영화 같은 삶을 사는 남자였습니다.

비트와 아스팔트 사나이 그리고 내 머리 속의 지우개와 놈놈놈에 이르기까지… 그가 출연한 꽤 많은 히트작의 비하인드를 열거하는 순간에도 정우성은 젠틀하고 사려 깊기 짝이 없었습니다. 영화 똥개의 출연을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듯 ‘미남 정우성의 이미지 변신’을 위해서가 아닌 자신이 경험하지 못했던 아버지와의 교감을 영화 속으로나마 표현하고 싶었다는 정우성은 훗날 아들을 아들로 규정짓지 않고 때로는 아들을 남자로 때로는 아들을 친구로 때로는 진짜 아들을 후배로 대할 수 있는 소통을 나누고 싶다고 말합니다. “내가 아버지라는 단어 안에 갇히고 싶지 않아요. 아들을 아들이라는 단어 안에 가둬두고 싶은 생각도 없고. 같이 인격체. 눈을 맞댈 수 있는.” 순간 강호동이 우매하게 던진 “왜요?” 라는 당혹스런 질문에 “그런 경험의 시간이 없었잖아요.”라고 무심결에 대답했던 정우성은 “없었거든요. 모르시겠군요.”하는 살가운 덧붙임을 잊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뭐 정우성도 말했듯이 결국 이 시간을 위해 그를 불렀을지도 모를 마지막 질문을 맞이한 순간. 물을 마시는 정우성을 두고 강호동은 물을 많이 마셔두라고 격려하듯 그리고 경고하듯 메시지를 건넸지요. “충분히 물을 드셔 주시기 바랍니다. 준비됐습니까? 준비되셨습니까?” 마치 화생방 훈련 경고 신호음 같았던 그의 한마디가 필요했던 이유. 그것은 16년간 별스런 루머 하나 없이 평탄한 연예계 생활을 해왔던 정우성을 처음으로 불쾌한 루머의 중심으로 올려놓았던. 그에게는 결코 좋은 기억으로 남지 않을 그의 짧지만 독했던 열애사. 이지아와의 열애 이유였죠.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그에게 하고 싶었던 질문은 이것이었겠죠. 유부녀임을 속이고 접근한 이지아를 도대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느냐고.

“그렇게까지 사람을 곡해된 눈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을까?”

하지만 정우성은 오히려 그 파파라치가 찍혔던 파리에서 이지아가 직접 공개한 교제 사실을 듣고 차라리 반가웠다는 뜻밖의 회상을 합니다. 유명인의 아내라는 사실을 숨기기 위해 그동안 이지아가 과거를 감추어두고 타인과 소통하지 못했음을 오히려 안타까워했던 그는 그간 이지아가 받은 여성으로서 수치스러웠을 수많은 루머들이 오히려 그 사실로 덮어질 수 있지 않을까 안도했다고 합니다. “아 그 루머가 다 진짜가 아니라고, 반론을 할 수 있는 명확한! 근거가 이 사람에게 있구나. 억울하지 않을 수 있구나.” 사귀는 여성이 결혼한 사실이 있고 심지어 그 상대가 대한민국을 들었다 놨다 했던 유명인이라는 사실이 배신으로 느껴질 수 있음에도 정우성이 이렇게 상식 밖의 해석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진심으로 이지아라는 여자를 사랑했기 때문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 친구는 그 상황에서. 그 긴박한 상황에서 본인이 저에게 할 수 있는 모든 최선의 예절을 다 지킨 거죠.”

그 당시의 남자에게… 이지아의 비밀을 통해 그 누구보다 큰 상처를 받은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정우성 자신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깨끗한 이미지의 정우성에게 그 사실을 알았건 알지 못했건 어떤 방향이든 간에 불쾌한 이미지가 심어질 수밖에 없었던 당시의 사건은 아무리 좋은 쪽으로 해석하려고 해도 결코 그녀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이야기를 포장해주긴 어려운 부분이죠. 당시를 떠올리기만 해도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것이 보편적인 사람의 마음일 텐데도 정우성은 단 한마디도 이지아에게 불리한 이미지가 남겨질 만한 발언은 꺼내지도 않았습니다. 무릎팍도사를 소위 면죄부도사라고 하며 출연한 게스트의 루머를 좋은 방향으로 희석시킨다는 말을 하곤 하지만 이날 정우성은 자신의 이미지를 포장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오히려 이지아에게 심어진 대중의 오해를 풀어주기 위해 그 자리를 나온 것 같기도 하더군요. 이지아에 대한 대중의 호불호나 그녀의 행동에 대한 찬반양론을 떠나 적어도 정우성의 사랑만큼은 마지막까지 아름다웠습니다.

특히 저를 감동시켰던 것은, 건방진 도사 유세윤의 장난마저도 잠시 침묵하게 했던 정우성의 여운 남는 회상이었습니다. 가십과 소란을 “예상”하고 “계획”하지 않고 그냥 연애를 했다는 정우성의 추억. 맛집을 좋아하는 그녀를 위해 파리의 유명한 레스토랑을 리서치하듯 돌아다녀 보기도 했다며 마치 꿈을 꾸듯 이야기하는 정우성의 이야기가 다소 쑥스러웠던지 문득 유세윤은 장난 같은 농담을 던졌죠. “에펠탑에서 사진은 찍으셨나요?” 순간 마시던 물을 뱉게 할 정도의 황당한 그의 장난에 웃음을 터뜨리던 정우성이 답한 한마디는 이런 유세윤의 장난마저도 잠시 침묵하게 했을 정도였습니다. “에펠탑에서 사진은 못 찍었어요. …찍어둘걸.”

아. 그는 아직도 그녀와 더 많은 추억을 만들지 못한 것을 안타까워하고 있었군요. 가라앉은 분위기를 농담으로 희석하려 했던 패널의 장난기에 순간 터져 나온 그의 진심. 그 짧은 한마디에 담긴 물기 어린 목소리에 어떤 미사여구로도 표현되지 않는 그의 진심이 느껴져 머리가 띵해지더군요. 같은 감정을 느꼈던 듯 시종일관 장난을 치던 어린 광희나 강호동 심지어 유세윤마저도 그의 이 짧은 진심에 아무런 농담을 호응하지 못했습니다. 침묵할 뿐이었죠.

한순간 스타 정우성을 나락으로 떨어뜨릴 뻔한 상처만 가득한 결말의 잔혹한 연애였지만 그는 결코 지나간 추억을 원망하지도 후회하지도 않았습니다. 오히려 더 많은 추억을 쌓지 못했음을 안타까워하는 그의 짧았던 파리의 연애가 문득 서글플 정도로 아름답게 느껴졌습니다. 그 CF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스치듯 지나가며 “나 지금 사랑에 빠졌어”를 표정 하나로 담아내던 정우성의 진짜 영화 같은 얼굴이 떠오르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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