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수가 있어서 더 인간적이었던 김연아의 레미제라블

그렇게 여왕의 귀환은 이루어졌습니다. 그렇게 멀게만 느껴졌던 여자 싱글 200점을 그리도 쉽게 넘으며…

B-class 답게 소박한 시상식이지만 또 모여든 모든 관객과 손을 마주칠 수도 있는 귀여운 시상식 영상….

워낙 수백 개의 댓글이 달리는 통에 일일이 다 답하기도 쉽지 않았습니다만 쇼트 프로그램처럼 이번에도 제 관전평이랄까 느낌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제 피겨 초년 팬 시절 브라이언 보이타노 경기를 떠올리다

젊은 분들이거나 혹은 피겨 팬이 된 것이 김연아 선수의 경기를 보면서부터이신 분들은 잘 모를 수도 있지만 1988 남자 싱글 올림픽 챔피언 브라이언 보이타노의 경기를 본 1987년 가을의 어느 날이 갑자기 떠올랐습니다. 그것은 1987 스케이트 캐나다였고 저는 1985년 카나리나 비트에게 꽃혀 미국에서 피겨를 보기 시작한 지 1년 정도 된 무렵이었습니다. 말하자면 겨우 트리플 점프와 더블 점프를 구별할 뿐 점프 타입 같은 것은 해설자인 스캇 해밀턴이 오우..트리플 러츠! 하면 러츠인 줄 알고 예스..트리플 플립! 하면 저게 플립이구나 하던 시절입니다. 구채점제 시절이니 단지 트리플 갯수와 넘어지지 않는 것 정도만 생각하며 보던 그 시절의 이야기를 잠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1987년 그 대회 중계를 보았을 때 제 눈에 들어온 선수는 우승자였던 브라이언 오서였습니다. 보이타노는 당시 쿼드를 시도했으나 넘어졌습니다. 그리고 오서의 그 우아한 3A에 놀랐습니다. 남자 선수도 점프가 우아하다 느껴질 수 있구나 생각했지요.

헌데 그 다음 날 신문의 관전평은 오서의 우승보다 보이타노의 프로그램 안무에 대한 것이 주종이었습니다. 미국 신문이라서 그랬겠거니 하고 당시는 생각했는데 지나면서 생각해 보니 그게 아니었습니다.

그 경기의 내용은 넘어지지 않았다면 보이타노의 승리였던 겁니다. 그리고 산드라 베직의 보이타노 안무가 브라이언 오서의 깨끗했던 점프와 흐르는 듯한 피겨보다도 더 관계자의 시선을 끈 것은 몇 가지 새로운 시도가 보이타노에게 있었는데 당시는 수행의 실수 때문에 점수로는 오서에게 뒤졌지만 수행이 완벽할 경우, 오서를 이길 수 잇다는 평이었습니다. 그렇다고 오서가 그것을 따라 할 수도 없는 것이고요..즉, 두 선수 간의 대결의 키는 보이타노가 어떤 수행을 보이느냐에 달려있다는 것입니다. 당시의 제 피겨 이해 수준으로는 이해 불가였지만 결국 전문가들의 그 말은 3개월 후 같은 장소에서 열린 1988 올림픽에서 현실이 되었습니다.

저는 그 때 “프로그램의 내용”과 “현재의 수행” 사이의 간격이 존재함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라이벌 간의 대결에서는 가진 프로그램의 내용에 따라 “누가 승부의 추를 갖는가?”가 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물론 그것을 어떻게 판단하고 이해해야 하는지를 알게 된 것은 그보다 한참 뒤입니다만…..

김연아의 레미제라블, 완성되면 마스터피스, 지금은 예고편….

상대 평가 위주였던 구채점제 경기보다 지금의 신채점제는 관객에게 (잘 훈련되기만 한다면) 훨씬 수학적으로 이해하기 쉽도록 되어 있습니다. 요소 별로 점수가 주어지고 그것을 합산해 그것으로 순위를 결정하니까요…그래도 피겨의 본질이라는 것이 있어 “내면적 상대 평가”와 “승부의 추”는 존재합니다.

201. 61이라는 김연아 선수의 NRW 점수는 당연히 이번 시즌 최고점이고 밴쿠버 올림픽 이후 안도 미키의 2011 사대륙 이후 나온 첫 200점 이상의 경기였습니다. 물론 그것만 가지고도 김연아 선수의 우월성을 이야기할 수 있고, 상대적으로 같은 기간 경기가 열렸으나 엉터리 판정이 난무했던 소치 그랑프리 파이널에서의 아사다 마오의 196점과 비교해 점수가 짜니 아니니 하는 말이 나올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 훈련된 팬들과 피겨 관계자들은 다 압니다.

201점이니 아니니가 문제가 아니라 이 프로그램, 특히 레미제라블이 가진 폭발성에 대하여…..

NRW와 그랑프리 파이널의 심판진은 다릅니다. 따라서 이 대회의 196점이 다른 대회의 186점일 수도 있습니다. 혹은 반대의 경우도 이론상 가능하지요.

하지만……프로그램의 질이라는 것은 피겨 심판이라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거부할 수 없는 움직이지 않는 원리입니다. 같은 수행이라면 프로그램의 질이 높은 선수가 이긴다는 것.

그래서 김연아 선수의 이 레미제라블 프로그램은 무섭습니다.

2A-2T-2Lo였어야 할 요소에서 1A-1T-1Lo로 수행한 것은 대략 6점의 손해가 있었습니다.(후반부 가산점까지 고려)

3S-2T에서 넘어지면서 안 그랬으면 받았을 다소간의 가산점을 포함하면 약 4점의 손해가 있었습니다.

두 개의 스핀에서 레벨 1과 레벨 3을 받았는데 여기서 대략 2점의 손해가 있었습니다.

이처럼 눈에 보이는 기술 점수의 손해만 대략 12점….만약 그대로 클린이었다면 기술점이 72점 선….물론 그것도 스핀과 스텝의 가산점은 그냥 이 정도라 보고 채점한 겁니다.

이러면 보수적으로 보아도 이 프리 프로그램이 가진 포텐셜 스코어는 142~145가 됩니다. 이런 정도를 갖고 있었던 프로그램은 신채점제 이후 오직 김연아 선수의 올림픽 프리, 거쉬인 피협 뿐이었습니다. 그리고 쇼트 프로그램의 경우 클린했으나 스핀/스텝 레벨이 3이니 그것을 보완했을 때 나올 수 있눈 점수가 75~76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김연아 선수의 이번 시즌 프로그램은 포텐셜 스코어가 무려 217~221이라는 계산이 나옵니다.

물론 이 경우라는 게 기술적으로 실수가 조금도 눈에 보일 정도가 없다는 것인데 그건 정말 보기 힘들겠지요 물론 우리는 밴쿠버에서 그 거의 99%짜리를 보고 228.56이라는 점수가 나오는 것을 목격했습니다만….

그러니까 아직도 대략 15~20점 더 올릴 수 있는 여지가 있는 김연아 선수의 피겨라는 점이 무서운 겁니다.

아사다 마오? 트리플 다섯 개라도 뛰고 나서 이야기하시기를…와그너와는 기본 20점 차…

이번 시즌 프로그램으로 볼 때, 채점 논란의 중심에 서긴 했어도 196점 대를 받은 아사다 마오의 경우를 보면 이번 그랑프리 파이널에서 4개의 실수를 했는데 그 중 러츠 롱에지는 감점도 적었지만(-0.5) 개선의 여지 자체가 없는 것이고 나머지 세 개의 점프(회전부족 2개, 더블 처리 1개)를 다 제대로 한다 해도 7~8점 상승에 그칩니다. 따라서 욕먹을 각오로 주는 점수가 202~3점 정도라는 거지요…..

아사다 마오 선수도 쇼트는 그랑프리 파이널에서 거의 실수가 없었으므로 거기서는 올려 봐야 1점 내외일 겁니다. 그걸 감안해 줘도 203~204…

그러니까 두 선수 사이에는 프로그램의 무게가 러츠(기초점 6.0) 2개 ~ 3개의 차이가 있는 겁니다.

3-3 도 없고 7 트리플을 프로그램 수행 계획표에 넣긴 하지만 3개씩만 성공시킨 아사다 마오와 실수가 있었더라도 3-3 포함 6 트리플을 성공한 김연아 선수 사이의 두 개의 다른 대회 점수의 격차가 없다면 (프리 프로그램만 비교) 어느 쪽이 잘못된 건지는 자명한 거지요. 그 잘못된 채점을 접어 주고도 이런 차이가 납니다.

하물며 TEB에서 127점 대를 받은 애쉴리 와그너의 경우는 당시 계획한 6 트리플을 3Lz 롱에지 외에는 다 클린했고 오로지 비점프 요소 레벨 업만 남은 상태라 2점 정도 상승이 가능하니….쇼트 경기에서 드물게 잘 했던 그랑프리 파이널을 적용해도 포텐셜 클린 스코어는 196~7 정도입니다. 이것은 말하자면 아사다 마오와 와그너 사이가 러츠 1개 정도 차이라는 걸 말하는 겁니다.

헌데 2010 올림픽 직전을 생각해 보시면…..

당시 제 글을 읽으신 분이라면 그 당시도 이렇게 포텐셜 스코어를 계산해 보니 김연아 선수와 아사다 마오 선수 사이에는 18점 차이가 있었습니다. 기억하시나요?

TEB 분석 결산 : 완벽한 마오도 김연아를 넘을 수 없다|09/10 챔피언 김연아 올림픽 시즌2009.10.19 19:07

거죠(쇼트, 프리 합해 8.56점 차이가 나고 있죠) 기술 부문에서 마오 선수가 완벽했어도 그리고 게다가 김연아 선수가 점프 한 개를 안 뛰어도 그 부분에서만 3.48점 차이가 나고 김연아 선수가 점프를 다 뛰었다고 공정하게…

그 올림픽에서 두 선수의 차이는 23점……

2년 반이 지난 지금, 그렇게 룰을 개정하고 비점프 요소를 개선하고 해 봐도 포텐셜 스코어의 차이는 대략 15점….겨우 3점 줄었습니다.

일단….

아사다 마오 선수는 트리플을 제발 다섯 개라도 제대로 뛰고 난 뒤라야 비교를 해 볼 거리가 될 겁니다. 하나 정도는 롱에지 처리 봐 준다 해도 말이죠…지금보다 66% 더 많이 뛰라는 겁니다.

레 미제라블, 감정선이 더 놓이면 울컥 증상이…

2012년은 레 미제라블의 해입니다. 뮤지컬도 왔고 영화도 곧 개봉이고…..

게다가 김연아 선수의 이 프로그램으로 인해 적어도 대한민국 흥행은 걱정할 필요가 없을 것 같습니다. 워낙 영화도 아카데미 냄새가 진동하고 뮤지컬이야 25년 넘게 공연되는 대작이고….

이번 김연아 선수 NRW 경기의 완성도는 기술적인 면을 차치하고 볼 때, 음악과의 조화와 안무는 높은 점수를 줘야 하지만 감정선의 처리는 85점 정도 주고 싶습니다. 이번에는 기술적인 면의 강조가 강했던 터라 거쉬인 때의 음악을 가지고 노는 정도의 완성도에는 좀 부족했습니다.

그런데도 세계 피겨 관계자들의 찬사는 놀랍습니다.

이제 피겨 스케이팅이, 여자 싱글이, 다시 사람들의 주목을 끌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마치 1987년 산드라 베직의 안무를 수행하는 브라이언 보이타노를 보고 사람들이 오히려 맞대결 승자인 오서보다 더 주목했던 것 처럼 증폭되고 있는 것입니다.

문제가 하나 있다면….

살아 움직이는 라이벌은 없다는 거죠.

오직 라이벌이 있다면?

2010 밴쿠버의 김연아 선수 거쉬인 뿐입니다.

저는 그 라이벌리가 크게 기대됩니다.

그래서 인간적인 실수를 보여 준 이번 NRW 레 미제라블이 더 애틋하게 들어옵니다.

더 보여줄 것이 많다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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